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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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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5 오후 11:35:04

Oskar Schindler (1908년 4월 28일 - 1974년 10월 9일)






1. 개요
나치 독일의 사업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합니다.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는 '오스카어 신들러'.
생전에 그는 술과 파티, 여자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방탕하고 쾌락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결혼을 여러 번 했고 아내 외에도 애인이 여럿 있었더선 여자를 매우 좋아했던 호색한 인물이였습니다.



2. 생애

2.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1908년 4월 28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스비타비(Svitavy) 지방에서 태어났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진 뒤 스비타비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가 되었으나, 쉰들러 일가는 16세기에 빈에서 모라비아로 이주한 독일/오스트리아 계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독일인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1935년에 체코슬로바키아 내 독일계 민족주의 조직인 '주데텐 독일인 당'(Sudetendeutsche Partei)에 가입, 활동하면서 독일 국방부 첩보부와 접촉하여 간첩이 되어 체코슬로바키아의 철도 정보를 독일 측에 누설했습니다. 이 혐의로 체코 당국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때마침 뮌헨 협정이 체결되어 형벌은 중지되었다.(체코슬로바키아는 연합군에 가담한 승전국이었으니 이들 입장에서 오스카 쉰들러는 매국노로 보일 수도 있으며, 그를 나쁘게 생각하는 여론도 존재합니다. 두 나라에서 오스카 쉰들러를 함부로 언급하면 봉변을 겪을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후 1939년 2월에 나치당에 자원 입당을 하여 나치당원이 되었습니다.




2.2. 제2차 세계 대전 당

같은 해 9월에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뒤 점령하자 한 밑천 챙겨보려는 목적으로 폴란드로 갔으며, 10월에는 나치 독일로부터 법랑 용기를 만들고 있던 유태인 소유의 공장을 불하받았다. 이 공장은 점점 확대되어 45,000m² 부지에 8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는 거대한 군수 공장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쉰들러는 나치당 친위대 슈츠슈타펠로부터 유태인 노동자를 공급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강제노동의 일환으로 수용소에 수감된 유태인들을 차출해 공장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쉰들러는 이 특권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어린이나 여성, 대학생들을 숙련된 금속공이라 속이고 자신의 공장에 데려와 은밀히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암시장을 이용해서 모자라는 물자를 조달하거나 유태인을 우대해 뉘른베르크 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게슈타포에게 조사를 받았으나 돈, 보석, 예술작품 등을 뇌물로 바쳐서 무마시켰습니다.(그는 뇌물로 바친 물품들을 장부에 꼼꼼히 정리해두었는데, 악명높은 게슈타포를 매수해야 하는 만큼 정말 어마어마한 액수의 물품을 뇌물로 바쳐 구워삶았습니다.)

1944년에 소련군의 진군으로 동쪽의 수용소가 해체되자, 많은 유태인들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쉰들러는 약 1,100여 명의 유태인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자신의 고향인 스비타비 지방에 군수공장을 세운 다음 이들을 이곳으로 모두 빼돌리는 식으로 약 1,200명을 구해낸 뒤, 자신의 모든 재산을 소모해가며 약 7개월 간 이들을 보호했습니다.
(행정 착오로 목록으로 차출했던 여성 유태인 근로자들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자 이들을 다시 데려 오면서 아우슈비츠 쪽에서 약 150명 정도의 장정들을 추가로 구출했습니다.)

분명 그는 원래 물질적으로 탐욕스러운 성향이 더 강한 사람이었고, 나치 독일에 동조한 부패한 기업가였습니다. 애초에 수용소에 갇힌 유태인들을 직접 노동자로 끌어들인 것도 그저 돈을 수월하게 벌기 위해서였는데. 하지만 유태인들을 데려오고 난 이후 이들을 점점 더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더니, 결국은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어가며 나치로부터 보호하기까지 하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그의 행동이 단지 돈벌이가 목적이라고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며. 그리고 마침내 그는 수백만 마르크에 달하던 자신의 재산을 모두 소모해가며 유태인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힘썼습니다.






2.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종전 후 그는 몇 가지 사업을 시작했지만 모두 파산하였습니다. 1949년에 쉰들러 부부가 아르헨티나에 가서 살다가 1958년에 오스카만 독일로 돌아갔고, 1974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시신은 예루살렘 기독교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아내 에밀리 쉰들러는 계속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2001년 7월에 독일로 돌아왔지만 3개월 뒤에 뇌졸중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1962년에 쉰들러의 이름을 딴 나무가 야드바셈의 거리에 자리잡았고, 1993년에는 이스라엘 야드바셈에서 오스카 쉰들러와 에밀리 쉰들러(Emilie Schindler, 1907~2001)에게 세계의 의인이라는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에밀리 쉰들러는 오스카 쉰들러의 아내로 1928년에 오스카와 결혼했고, 그가 유대인을 구출하는데 동조했으며,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도 직접 출연했습니다. 2001년에 뇌졸중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묘지는 유대인들의 성지인 시온 산에 있는데, 나치당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시온 산에 묻힌 것이라는 주목되는 점입니다.. 박해받던 1200명의 유대인들의 잊을 수 없는 생명의 은인이란 비문은 쉰들러의 인생을 가장 간결하게 전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쉰들러를 추모하는 유대인들이 그의 묘지를 참배하고 있습니다.





미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매우 존경받는 사람이며, 그 외에도 대다수 국가에서는 그를 위인으로 여깁니다. 체코슬로바키아 등 좀 안 좋게 보는 곳도 있긴 하지만...



3. 그에 대한 왜곡
사실 쉰들러는 본인의 의지로 유태인을 구한 것이 아니라 유태인을 부려먹기 위해 빼돌린 것 뿐인데, 이게 졸지에 유태인들을 살린 게 되어 영웅 취급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되었는데, 그 주장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아래의 반박에 나와 있듯이, 이 주장들은 전부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불과합니다.
(위의 주장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나온 것인데, 애초에 이 프로그램은 흥미 위주 프로그램이다 보니 내용에 신빙성이 거의 없습니다.)



쉰들러는 자기공장에 온 유태인들의 돈과 귀중품을 빼앗고 그걸 팔아서 유흥비로 썼다?
유태인들은 가지고 있던 돈과 귀중품을 전부 나치 독일군에게 압수당하고 수용소로 보내졌던지라 겨우 지급된 옷 말고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쉰들러는 호색한으로,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이 아니다.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묘사되듯이, 전쟁 초기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이며 부정부패와 복잡한 이성관계 등 개인적인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목숨이 폐기물이나 다름없이 기계적으로 종결 처리되는 비인간적 환경에서 쉰들러는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며 위험을 무릅쓰고 1,000명이 넘는 사람을 구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박해와 압제가 만연한 곳에서도 누군가는 인간성(양심)을 지키며 정의를 실현하고 인류애를 실천하는 숭고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입니다.



쉰들러의 행동은 자신의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
쉰들러는 직업이 사업가였던만큼, 처음에는 그저 유태인들을 돈을 수월하게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유태인들을 구출한 이후부터 일부러 불량품을 납품하였고, 독일군들이 계속 반품하는 바람에 곧 적자에 빠졌다. 이 때문에 쉰들러의 지인들이 공장을 폐쇄하고 사업을 접어 더 이상 빚을 늘리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오히려 유태인들을 위해 많은 빚을 져가며 공장을 유지하였습니다. 실제로 쉰들러는 전쟁이 끝난 뒤 많은 빚 때문에 파산했습니다. 그가 그저 자신의 이득만을 위했더라면 절대 저런 이유로 파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쉰들러가 유태인을 탄압하는 것을 직접 본 증인들이 있다.
그가 유태인을 탄압하는 걸 봤다고 증언했던 사람들은 쉰들러 증언으로 나치전범 행위에 가담이 증명되어 처벌받은 사람들이라 신빙성이 거의 없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살아남은 유태인들을 무장시켜 소련군과 싸우게 하고 자신은 도망쳤다.
유태인들은 자신들을 해방시키러 온 소련군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만약 쉰들러가 진짜로 그랬다면 오히려 무장한 유태인들이 그를 소련군에 넘겼을 것입니다. 이 주장은 아마추어들이나 홀로코스트 부정파 측에서 제기한 터무니없는 소리고, 실제로 쉰들러에 의해 구출된 유태인들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악명높은 모사드를 통해 불법적, 합법적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아메리카 등 해외로 도주한 나치 독일 관료들을 마구 잡아들여 재판정에 세워 처단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전에 쉰들러가 유태인에게 소련군과 전투를 벌였다면 소련은 어떻게든 쉰들러를 시베리아로 유배보냈을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판단했을때 행실이 좋은 인물은 아니였지만
인간성을 잃지 갖고 1200명 유대인의 생명을 구한 오스카 쉰들러의 이야기였습니다.



출처는 나무위키

-끗-










보너스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 관계로
시스루 아이유와 소주먹는 아이린과 비키니 움짤을...




시스루 아이유




















소주먹는 아이린
















비키니 짤































어이고 글 퍼와서 조금식 다듬고 수정하고 사진이랑 움짤 넣고 하느라 1시간이 넘게 걸렸네. -ㅅ-
나이먹어서 귀찮아지넹..
갑자기 글 글올릴 생각나면 그때 글을...



  그러하다.

121.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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